플레이시간 총 49시간. 본편 엔딩은 봤으나 DLC는 버그 때문에 1부 마지막퀘스트에서 막히는 덕분에 지지.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리뷰를 적는다.
튜토리얼격인 앞부분이 끝나고 본격적인 플레이 초반부에 받은 인상은 매우 좋았다. 새로이 생겼거나, 기존에 있었지만 개량된 시스템들이 신선할뿐더러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개선된 기본 토대
우선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양대 축인 파쿠르와 전투부터 살펴보자. 처음 움직였을 때 받은 느낌은 '가볍다'였다. 전작들이 무거운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3차원 공간을 달리고 구르는 파쿠르가 어떻게 무거울 수 있을까!) 그런 전작보다 더 사뿐히 움직이는 캐릭터를 보면서 다소 당황했다. 전작이 뛰어다녔다면 본 작은 날아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몸놀림이 가벼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측면 스텝이나 별도의 조작이 필요 없게된 벽면 하이점프도 이런 느낌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덕분에 파쿠르 와중에 훅 블레이드의 부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나무를 탈 수 있게 되었기에 야외나 한산한 동네에서도 파쿠르 액션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로마를 예로 들면 시내에서는 건물 지붕을 타고 다닐 수 있었지만, 도시 밖으로 나가면 한산한 평원에서 그냥 걷거나 말을 타고 다녀야 했기에 이동이 지루했던 기억이 있다. 본 작에서는 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 숲 한가운데에서도 파쿠르를 할 수 있게 되었기에 그 어떤 곳에서도 이동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무를 탈 수 있게 된 것은 다른 측면에서도 장점이 되는데, 이 때 까지 파쿠르를 위해 다소 바글바글하게 배치되었던 건물들을 떨어뜨려서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늘어난 점프거리와 건물 사이에 나무 혹은 깃대를 하나 배치해둔 덕분에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건물간 이동이 가능하다. 덕분에 길이 넓어져 이전(브라더후드)처럼 말 타고 가면서 지나다니는 온갖 사람들 다 박으며 달렸던 이상한 상황은 개선되었다.
전투 시스템은 브라더후드에서 연속집행(이 때 까지 전투 시스템 변화 중 가장 극명한 변화였다.)이 추가된 것 이상의 변화가 있었다. 이전에는 방어 후에 할 수 있는 행동이 카운터밖에 없거나 다른게 있더라도 별 의미 없는 조작(카운터 훔치기 같은거)이었던 것에 비해서 본작은 카운터, 무장해제, 던지기 등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적 캐릭터 중 일부는 카운터를 방어하고 일부는 무장해제를 방어하는 식으로 적의 타입이 눈에 띄게 다변화 된 것이다. 하이렌더를 예로 들면 이 병종은 카운터가 먹히지 않고, 연타시에 막타도 들어가지 않으며, 연속집행도 방어하기 때문에 무장 해제를 시킨 다음에 연타로 잡거나 총으로 쏴 버려야 된다. 그래서 전투 중에 하이렌더를 피하며 연속집행을 하거나 미리 총으로 정리한 뒤 남은 적을 잡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과 조작을 요하게 되었다.
적에게 특성이 생긴 것에 더해서, 적의 대응 역시 많이 달라졌다. 일단 순찰대의 머릿수가 많이 불었다. 1편의 1명이나 레벨레이션의 4명을 능가하는 7~8명. 단순히 머릿수만 불어났으면 연속집행의 먹이감이 불어난 것 뿐이겠지만, 이번 적들은 총이 기본 장비이며 적극적으로 사격을 한다. 전투 중 멀리 떨어져 있는 적들이 잠잠하다 싶어서 보면 어느새 일제 사격을 쏜다. 또 수시로 공격을 가하기에 전장을 전체적으로 볼 필요가 생겼다. 이것만이 아니라, 이번작에는 전투 중 군악대가 도주하는 것을 내버려두면 주변에 있는 적을 다 모아온다. 이전에는 가까이 있던 적이 싸우는걸 보고 달려오는 정도를 제외하면 적의 증원이 없다시피 했었기에 한 집단씩 궤멸시키며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최악의 경우 1 : 20 까지도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전투가 다소 까다로워진 본 작(개개인은 예니체리보단 쉽지만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갔다.)에서 이렇게 적이 늘어나면 제법 위험해진다. 에지오 트릴로지에서는 예니체리 캠프 한복판에서 회복약 러쉬로 1 : 30도 해낼 수 있었지만 본 작은 회복약이 없다. 그래서 '대충 맞고 약 먹지 뭐' 이러다간 금새 사경을 헤매게 되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전투에 제법 긴장감이 더해졌다.
이렇게 파쿠르와 전투가 개량됨으로 인해 단순히 새로운 느낌을 줄 뿐만이 아니라, 게임 내내 편의성을 보장하면서도 재미를 강화할 수 있었다고 평하고 싶다.
넘치는 포텐셜
이런 기본 토대만 아니라, 부가요소들도 많은 면에서 개량되었다.
우선 빠른 이동이 개량되었다. 이전의 빠른이동은 해당 포탈까지 이동한 다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본 작에서는 어디서나 포탈 위치로 빠른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포탈 위치 역시 다양해졌다. (국경에서는 좀 부족하다. 매 편마다 포탈이 부족한 곳이 꼭 있더라.) 여기저기 다른 필드로 이동하며 부산하게 돌아다닐 일이 늘어났기에 이게 전작 그대로였으면 꽤 불편했으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사냥이 추가되었다. 주인공 코너가 네이티브 아메리칸 출신답게 야생 동물을 사냥해서 고기, 가죽 및 부산물을 얻는 시스템인데, 불란서가 비버 가죽을 원주민들과 교역을 통해 공급받았다는 것(그리고 이러다 원주민들이 비버 씨를 아주 말려버릴뻔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보이는 족족 가죽 벗기고 다니는 것이 제법 자연스럽다. 적이 인간에 한정되었던 전작들과 달리 상황의 다변화를 추구한 것이라고 본다. 애매하게 전투 시스템에 맹수와의 전투를 구겨넣느니 아예 버튼 액션으로 돌린 것도 잘 선택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부가 퀘스트들은 각각 개성이 생겼다. 팩션별로 퀘스트를 주는 점은 브라더후드가 연상되지만, 팩션별로 사냥/탐사/주먹질 식으로 컨셉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점에서 내적 일관성과 외적 차별화를 동시에 노렸다고 할 수 있을까. 일부 퀘스트의 질에는 좀 의문이 있지만 대체로 잘 나온 편이다.
(의문이 있는 퀘스트 - 원래는 미끼로 유인해서 사슴을 잡아야 되는 사냥 퀘스트. 단서 찾아서 두리번거리다 문제의 사슴이랑 인카운트[...]해버려서 도망가는걸 죽으라고 쫓아가서 사슴이 헤메다 근처에 다가왔을 때 덮쳐서 겨우 잡았다. 암만 생각해도 이렇게 잡아선 안됐을거 같아...하지만 단서가 보이지 않았지...)
암살자 고용 관련 퀘스트는 역대 암살자 고용 퀘스트 중 가장 잘 나온편이다. 이전엔 그냥 길 가다 공격받는 시민을 구출하거나 하는 식으로 약간의 특이한 퀘스트를 거친 뒤 매우 쉽게 데려올 수 있었다. 본작에서는 이 퀘스트가 좀 더 복잡해져서 각 동네에서 문제 행위를 일삼는 적의 졸개들을 일망타진하고(암살자 후보 한명당 3종류, 총 9군데. 각 암살자마다 스토리가 다른 만큼 퀘스트도 다르다.) 암살자 후보와 함께 소요를 일으킨 템플러를 암살하고나서 암살단에 받아들이는 구조다. 다만 이런 구조를 바로 알려주진 않았고 퀘스트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이 최종퀘스트가 나타난거라서 좀 당황스러워다. 또, 이렇게 스토리성을 강화하면서 사전에 설정된들만 데리고 올 수 있기에 암살자 고용의 자유도가 사라진 것(이젠 시스터후드를 만들 수 없다!)과 각각이 개성있는 캐릭터임에도 고용 이후의 이벤트가 부실한 점은 좀 아쉽다.(대화 이벤트는 있으나 퀘스트는 없다.) 부하 암살자가 할 수 있는 일도 불어나긴 했는데 계속 파견 보낸다고 써볼 일이 없어서 유용한지는 판단불가. (스카우트 할 때 한번은 써보게 유도하기는 하는데, 안써도 아무 지장 없어서 그냥 안썼다.) 이런 부분이 다소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항해파트 생략-
새로 추가된 시스템 중에서 가장 좋게 평가하는 부분은 영지경영 및 아이템 수급 시스템이다. 에지오 트릴로지의 경영요소는 아이템과 상관 없이 돈을 부은만큼 돈이 들어오는 단순한 구조였다. 그래서 상점에 잔뜩 투자는 하지만 아이템은 스토리가 진행되면 저절로 언락되고 내가 투자해서 열어둔 상점에 가서 사는, 지금와서 생각하면 다소 이상한 시스템이었다. 이번편에서는 동네가 몬테리지오니를 능가하는 깡촌이라 영지내에 상점이 없다. 초급~중급 아이템들은 도시나 개척촌의 상점에 가면 살 수 있지만 최고급 아이템은 비매품이다.(참고로 전작에선 대체로 특정 도전과제를 완료하면 비매품 무기를 주는 식이었다.) 이 비매품 고급 아이템을 구하기 위한 밑작업이 제법 재밌다. 퀘스트를 통해 암살자 후보들처럼 사전에 설정된 영지 주민을 데려오고 스토리가 진행되거나 새로운 주민을 데려옴으로 인해 새로운 영지 퀘스트가 하나씩 열린다. 이를 진행하면 영지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영지가 점점 발전해서 생산자가 더 좋은 아이템을 생산할 수 있고, 최종적으론 비매품 레어템들까지 만들 수 있다. 또, 코너의 장비만이 아닌 교역품을 직접 만들어서 무역을 할 수 있다. 타지역의 상점들 혹은 바닷길을 건너 거래할 수 있는 교역상들이 다수 존재하고, 이들이 각자 중시하는 품목이 다르기에 제품과 상인을 잘 맞출 경우 거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무역은 이 게임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하다.
이렇게 직접 아이템과 관련되는 보상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그간 알타이르나 에찌오가 일반인과의 교감이 없었던 것에 비해서 코너와 주민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교감하며 우정을 쌓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다. 아킬레스의 말에서 강조되듯이 이 게임에서 몇 안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네가 이곳이고 코너의 목표를 작게나마 달성한 곳이기도 하다. 그 장소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점은 코너의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굉장히 의미 깊은 부분이자 플레이어에게도 보람찬 느낌을 줄 수 있는 장치이다.
그래서 정리해보자면, 어쌔신 크리드 3는 포텐셜로 가득찬 보물상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충 10시간째부터 20시간쯤까지는.
납득할 수 없는 스토리
앞서 말했듯이 기본시스템은 상당부분 개량되었고 이쪽에는 별 불만이 없다. 하지만 이런 신선함으로 이끌 수 있는것은 끽해야 10시간 정도였다. 그리고 그 10시간동안 튜토리얼이 계속됐다.
...진담이다. 튜토리얼이 10시간이다. 시퀀스 12개 중 5개. 튜토리얼이 끝나지 않는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서브퀘스트를 할 수 있는게 시퀀스 6부터다. 그리고 이 게임은 오픈월드 지향이다.) 게다가 그 튜토리얼에서 알려줘야 할 것을 다 알려준 것도 아니라서 나중에 새로운 시스템이 열리면서 그제서야 알려주는것도 있다. 아니면 필요할 때나 알려주는(해전에 대해 쓴 꼭지 참고.) 시스템도 있다. 이 튜토리얼 기간동안은 기본 시스템이 제공하는 재미만으로 버텨야 하는데, 아무리 잘 만든 액션게임이라도 10여시간 정도 하면 액션만으로는 질린다. 시리즈가 시작된
어쌔신 크리드 1편을 생각해보면, 막바지에는 참신한 퍼즐(암살)을 즐기기 위해서 고행 하는 마음으로 퀘스트를 치우고 있었지 않았었나. 완급 조절의 실패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그 10시간동안 오픈월드 체험을 하지 못할 뿐이지 스토리는 진행되긴 한다. 근데 이 초반 스토리도 문제인게, 무려 서술 트릭을 시도했다. 게임에서 서술트릭을 시도하는건 굉장히 드문 경우고, 내가 직접 본 것은 이게 처음이다. (다른 사례가 있는지는 과문해서 잘 모르겠다.) 문제는 아무리 초반에 밝혀진다고 해도, 서술트릭을 성립하기 위한 밑밥이 필요하고, 설득력을 위해선 이 밑밥이 짧아질래야 짧아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플레이 시간의 상당 부분이 이에 소비됐고, 그 결과 초반 반전을 위해 근 5시간 이상이 쓰였다. 이를 위해 별도 필드를(극장, 배 안) 만들정도로 공을 들인 반전이는 하지만, 그로 인해 본격적인 플레이가 한참 뒤로 밀리게 되어 '포텐셜을 연달아 피로하여 플레이어를 매혹할 수 있는 초반의 유용한 찬스'를 날려버린 것을 생각해보면 헛수고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 얘길 꺼냈으니 본 플레이의 스토리도 얘기해보자. 개인적으로 게임의 스토리는 화룡점정의 눈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가 없어도 플레이가 재밌으면 좋은 게임이지만 거기에 스토리가 이상하면 게임이 이상해지고, 스토리까지 좋으면 게임은 명작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은 이상해졌다. 메인 스토리는 앞부분에 그렇게나 공 들인것이 무색하게도 대강대강 진행된다. 주인공 코너의 이야기는 메인스토리 그 자체로 보면 본인이 이루고자 했던 것, 지키고자 했던 것은 대부분 실패하며 소속된 암살단과 영지만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굉장히 씁쓸한 전개다. 이렇게 플롯만 보면 굉장히 절절하다. 하지만 이를 스토리로 전개하지 못했다. 코너가 자신의 부족을 위해 독립군의 편에 서는데 왜 독립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면 부족의 문제도 잘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독립군이 자유타령 하니까 오 저긴갑다 하고 가서 서있는것 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아님 무조건 템플러의 정 반대편에 선 것으로 보이거나. 후자의 시각는 암살시 템플러의 유언에서도 언급되는데, 1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었다. 템플러는 제 나름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고 유언에서 꼬박꼬박 언급하여 알타이르는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차후 알타이르 스스로의 고뇌를 통해서 어느정도 주인공의 입장도 풀어나갔던 것과 비교하면 코너의 생각은 전혀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묘사되지 않는다. (참고로 1편의 스토리텔링이 훌륭했다는것은 절대 아니다. 시퀀스 초반마다 혼자서 중얼거리다 해결하는 것에 가깝다.) 비극은 주인공에게 깊이 동감할수록 비극성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정보가 너무나도 없어서 동감을 할 수가 없다. 이래서야 비극의 의미가 없다.
주인공 묘사가 이정도니 주변인물들은 더 가관이다. 아군 포지션인 독립군 측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마구' 나온다. 워싱턴, 프랭클린 정도가 아니면 미국인이 아닌 이상 잘 모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데 뭘 하는지, 왜 하는지는 역시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 역사에 스토리가 잘 조합된 것이 아니고 역사에 스토리가 끌려가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시리즈의 조연들은 제대로 묘사된 적이 없긴 하지만 그 비중 역시 제대로 묘사가 되지 않아도 상관 없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예외라면 브라더후드의 아크 에너미 체사레 보르지아인데, 체사레는 꾸준히 묘사가 되면서 캐릭터가 잡히고,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은 극 중 전개를 통해 꼬박꼬박 해줬기에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작의 어느 캐릭터도 이런 수혜를 받지 못했다. 데이터베이스로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게임을 멈추고 글을 읽어야 되는 시점에서 좋은 표현방법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워싱턴에 대한 표현이 특히 심각한게, 그 비중과 영향력은 독립전쟁 전체에 걸쳐있는데 비해서 이에 관한 설명이 전무하다. 어느새 저쪽에 가서 포진하고 있고 이쪽에 와서 전투를 하는데 그 사이에 설명이 없다. 이 워싱턴은 후반 반전의 주역이기도 한데, 워싱턴과 코너의 관계가 거의 묘사되지 않아 (코너가 그냥 워싱턴 팬보이 같이 보일 때도 있다.) 코너의 불구지대천의 원수였다는 반전이 '어 그래?' 정도의 감흥만 준다. 포지계곡에서 워싱턴과 대화 이벤트가 있으나 이것이 필수가 아니라서 그냥 넘어간 나의 잘못도 있겠지만 이런 위치의 캐릭터라면 반드시 볼 수 있게 했어야 했다.
본 작의 아크 에너미격인 헤이담은 좀 색다르게 문제가 있다. 코너가 태어나고나서 처음 봤는데 어느새 자기 아들이란걸 알고 있고, 평상시 행동은 몇번이고 코너를 죽일뻔 하는 등 냉철한 템플러로 보이지만 묘하게 코너에게 정을 주는 것이 드러나게 묘사가 됐는데 이런 헤이담의 행동은 게임만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서로 누군지 알고 있고, 어느새 약간 친해지고 하는 식이다. 별도로 판매된 소설을 보면 헤이담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된단다. 이렇게 별도의 소설을 낼 계획이었다면게임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소설은 부가적인 재미를 줬어야 한다. 게임과 소설을 두루 섭렵해야 이해를 할 수 있게 만드는건 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스스로 박살내는 처사가 아닌가.
이렇게 액자 안이 총체적 파국인만큼이나 액자틀의 상황도 처참하다. 중간에 바깥에 나가서 하는 미션이 몇 있는데 기,승,결이 없고 '전'만 있다. 그 '전'도 제작진이 상정한 대로 일직선 진행만 해야된다. 액자 안에는 그나마 미션 진행의 자유가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째서 현대 미션은 이렇게 구성한건지 의문이 든다. 스토리 적으로도 데스몬드 연작의 마지막 편인데, 데스몬드 입장에서는 아무런 카타르시스가 없다. 레벨레이션 엔딩에서 풍기던 '이젠 모든 것을 끝내야 할 시간' 포스는 어디로 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떡밥을 그냥 막 해소하고 떡밥을 마구 생산하고 엔딩. 끗. 액자틀의 상황이 허망하기로는 1편을 능가한다.
주요 인물들이 이런데 조연들은 어떻겠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엮어내는 이야기가 과연 플레이어에게 와닿겠는가? 본 게임의 스토리는 에찌오의 노인 관광 이야기 수준이었던 레벨레이션보다 더 끔찍하게 구현되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지금 스토리의 정합성이 안맞는거 같은데?' '이 캐릭터는 대체 왜 이렇게 행동하는거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게임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게임의 재미를 덜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조율되지 않은...
스토리가 가장 큰 문제긴 하지만,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런식으로 미처 조율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점은 여러곳에서 나타난다.
일단 UI 측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앞서 영지경영에 굉장히 후하게 평가를 했는데, 고생해서 성장시킨 영지에서 결실을 거두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산출물 구입, 제조, 판매. 이 모든 측면에서 편의성의 ㅍ자도 고려하지 않고 UI가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구매 탭에서는 수많은 산출물들이 최소한의 구획으로 나눠져 있을 뿐이며 그 아래 항목들은 직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이 중 하나를 찾아서 사기가 꽤 번잡스럽다. 제조 과정에서도 불편한 UI는 마찬가지라 한참 뒤적거려야 만들고자 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는데다(이쪽도 구획은 나눠져 있으나 별 도움이 안된다.),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구매 탭으로 가서 뒤져서 사온 다음에야 원하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그 부족한 재료가 가공품일 경우엔 그 것을 제조할 수 있는지 체크 한 다음에 재료가 부족하면 재료탭으로 가서 구매 한 후에 제조해야 겨우 만들 수 있다.) 이 제조는 한번에 1개만 만들 수 있어서 10개를 만들고자 하면 10번 제조를 해야하고, 바로 옆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메뉴의 맨 처음부터 다시 들어가서 만들고자 하는 제품을 찾아야 되는 등 끔찍하게 시간을 잡아먹고 신경줄을 계속 긁어대는 구조다. 이렇게 만든 제품을 판매하려고 하면 판매할 물건을 하나하나 뒤져가면서 누구에게 팔지마저 하나하나 결정한 다음에야 판매 슬롯 '하나'에 올라간다. 9개를 팔기위해선 이걸 8번 더 하면 된다. 설명이 장황하지 않냐고? 실제로 하는 행위다. 물건 몇개 제 값에 팔자고 5분 넘게 낑낑대고 있어야 된다. '이러느니 그냥 안팔고 말지'싶어서 가공이 필요 없는 곰가죽이나 몇장 집어다 팔다가 말았다. 문제는 이 게임의 아이템 가격은 이렇게 교역을 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플레이 내내 돈이 모자랐고,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상점에서 파는 무기를 전부 모으지 못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상점에서 파는 무기를 아예 사지 않았다.에 가깝다. 지도만 사는데도 돈이 다 나가서.)
영지경영도 시스템 자체는 괜찮지만, 장비 제조의 키 퍼슨이라 할 수 있는 대장장이와 제단사가 정말 후반에나 마을에 들어온다. 상자를 열심히 찾은 사람은 시퀀스 7이나 8정도면 제조법을 거의 다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이 캐릭터가 없어서 아이템을 만들 수가 없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문제는 이들이 만드는게 각종 수제 무기와 쌍권총 주머니, 독다트 주머니 등 유용한 아이템들 뿐이라는거다. 그나마 무기는 상점에서 팔기라도 하지만 주머니는 전부 비매품이라서, 전작에서는 시퀀스가 지나면서 하나씩 풀리던 장비 갯수제한이 막바지나 되서야 겨우 풀리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영지민의 레벨로 만들 수 있는 품목을 구분해두긴 했는데, 레벨업 이벤트가 후반에 집중되어있어서 렙업 하면서 하나씩 풀어나가는 재미도 없다. 그냥 짜증나는 제한사항일 뿐이다.
즉 영지 경영은 그 자체로 재밌긴 하고 보상도 괜찮지만, 그 보상을 맛보는것은 굉장히 후반에나 가능하며 그나마도 많은 인내심을 요하게 되었다. 단순히 이벤트 배치와 UI 설계를 개판으로 한 덕분에.
또한 본 작은 버그가 시리즈 중 가장 많다. 해상 교역에서 버그로 위험도가 80%로 고정되는 거래지점 2곳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됐다. 플레이 중 일정 시점 이후엔 국경에서 보스턴에 가는 빠른 이동 포인트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항구로 빠른 이동한 다음에 겨우 보스턴에 가곤 했다. DLC인 워싱턴 왕의 폭정에서는 이벤트가 꼬여서 더이상 진행이 되지 않는 경우를 목격했다. (해결하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쯤되니 정 떨어져서 원. 그냥 집어치웠다.) DLC가 여럿 나오고 후속편인 4편이 출시된 유명 프렌차이즈임에도 이런 버그가 잔존하고 있다는 것은 유비소프트의 고객지원을 의심하게 만드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의미 없이 양만 많은 수집요소도 여전한데, 이번엔 특이하게도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임 내적인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것이 1편이 연상된다. 2편의 깃털은 간단한 이벤트로 의미부여를 해줬던 것을 생각하면 아쉽디 아쉽다. 아니 1편의 깃발이나 브라더후드의 보르지아 깃발은 적의 깃발을 철거하는 것이니까 별도 설명이 없어도 납득은 가는데, 그냥 깃털덕질하는 코너는 대체...그런 주제에 회수는 역대 최악의 난이도다. 나무 중간쯤에 있는데 바로 타고 올라갈 수 없는 나무라서 거기까지 갈 수 있는 루트를 탐색해서 파쿠르로 깃털 위치까지 이동해야 겨우 회수할 수 있다. 재밌지도 않은걸 난이도만 올려서 어쩌자는건지 모르겠다.
버그관리, UI, 이벤트 및 시스템의 조정은 잘 되어 있으면 욕을 안먹을 뿐이지만, 잘 되어 있지 않으면 기존 요소들의 포텐셜마저 파묻어버리는 요소이다. 그리고 이 게임은 이를 증명했다.
총평
한줄 평 : '포텐셜은 넘치지만 개화를 못시켰다.'
레벨레이션 리뷰때 말 했지만, 매년 쏟아내다 보면 한번쯤 삐끗할 때가 있다. 이번엔 연속으로 삐끗했다. 레벨레이션 때야 기획의 실수라고 보이는데, 3편은 포텐셜을 봤을 때 방향성 자체는 잘 잡혔다고 본다. 이건 조율상의 문제이며 이는 시간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제작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전작과 마찬가지임에도 본작이 더 엉망인 이유는 신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가 아닐까싶다. 이렇게 보자면 더 나아진 것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기에는 1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무리하게 연작을 찍어내는 프렌차이즈의 딜레마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 더해서 유비소프트에 대한 신뢰도 사라지고.) 그래서 본작에서 보여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을 해줄 수 없다. 레벨레이션과 함께 프렌차이즈 전체에도 희대의 지뢰라인을 구성하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3편을 신나게 하던 중반쯤만 해도 프렌차이즈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으나, 앞서 말한 문제점들을 겪으며 급속도로 실망했다.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가 4편의 컨셉이 맘에 들어서였는데, 전작이 연이어 이렇게 망하니 4편에 대한 기대마저 줄어들었다. 그나마 그 자체로 괜찮았던 해전이 주 소재인 4편이니 언젠가 세일하면 해보긴 하겠지만...
판정 : 기대하지 말고 하다가 질릴거 같으면 엔딩보고 접을 것.